스타인카푸스 2013. 12. 19. 17:33

가장 큰 효도 중의 하나가 내 나이에, 내 상황에 맞는 것을 하는 것을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것이라 믿는다.


완전 평범한 사람처럼 살라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나이와 상황에 맞는 삶을 살라는 것 정도?

상황은 주어진 것이니(미래의 상황은 자신이 바꿀 수는 있지만 현재의 상황은 주어진 것이니) 나이가 쟁점이 되겠다.


커다랗게는 한국이란 문화에서 자란 한국인이면 한국의 문화에 맞게 나이와 상황이 조절될 것이고.

조금 더 작게는 유학생이란 신분이 있다면 유학생답게 나이와 상황이 조절될 것이고.

아주 작게는 내 개인의 자금상황에 맞게 사는 것 정도가 될 듯하다.


그것을 부모님께 드리고 싶어서(그리고 이것들 드리면 자식걱정에 잠못이루게 만드는 불효는 피할 수 있다) 커다란 삶의 구도는 그렇게 잡는다.

몇 살까지 독립하고.

몇 살까지 집을 사고.

몇 살까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몇 살까진 손자를 보여드렸으면 한다... 뭐 이런.


몇년 까진 빗나가도 괜찮다.

하지만 서른 다섯이 되었는데 직장이 없고.

마흔이 되었는데 결혼을 못했고.

마흔 다섯이 되었는데 자식이 없다면 그건 불효라 생각한다.

커다랗게 보면 부모님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이 나의 행복에의 길과도 상충하기에 큰 희생도 없고 작은 기쁨들은 함께 한다.

그렇기에 위의 상황들은 내가 나를 위해 피하고픈 것이기도 하다.


페북 지인들 중에 이것들을 조금 더 신경써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는 찼으나 특별히 하는 일은 없고 페북에 드라마나 애완동물사진, 혹은 하소연만 올리는 분들을 보면 특히 그렇다.

물론, 나에겐 그들에게 전해줄 의무가 없어서 안 그러고, 권한은 더더욱 없으며,

듣지도 않을 것이며, 쓸데없이 말해서 서먹하게 만들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래서 그러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의 잣대로 타인의 삶을 평가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남들은 모르겠는데 난 성격상 항상 분석을 할 수 밖에 없는 단점이자 장점을 가진 사람이라 피할 수 없다.

다른 누구에 대해 의견이 없이 살 수 있긴한가? 나로선 불가능한데 남들에겐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그건 내가 남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 모를 것이고, 설령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나의 머리에 따라 해석될 것이므로 그래도 모를 듯하다.


개인마다 행복해지는 방법이 다양할 것이다.

내게 나의 스타일이 있는 것처럼 남에게도.

가능하면 존중해주고 싶다.

하지만 반면 정말 아니다 싶은 것, 그리고 내가 그 사람과 충분히 가깝다면,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남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것 자체만으로 본다면 그건 잘못이 아니지 싶다. 

문제는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단 것과, 그리고 내겐 의견을 말해줄 의무도 권한도 없단 것.

때론 삶은 정말 간단한 방법으로 나와 남들이 그나마 잘 지낼 수 있게 해준다.

안그랬으면 어쩜 내 주변엔 사람들이 더 없을 수도 있겠지.


요즘 상당히 자주 생각해본다.

내 주변엔 사람이 없는가 있는가. 있다면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

굉장히 많으면서도 정작 같이 둘이서 밥먹을 사람은 몇 없다.

그래도 어른들에겐 개념있는 사람으로, 동생들에겐 믿음직한 형으로 보여지는 듯하긴 하다.

성당 회장을 할 때나, 직장을 떠났을 때 직장 동료들이나, 모두 충분히 잘 대해주었다.

아무런 트러블도 없었다.

그런 의미론 정말 무난하게 잘 살고 있다.

아무의 적으로도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의 아군으로도 보이지 않는다는 걸지도.


법대에서 보니 주변에 나같은 아이들이 많더라.

그래서 이곳에 온건지 아니면 내가 정말 미국식이라 그런건지 모르겠다.


나이에 맞춰선 살고 있다.

아무 문제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눈을 마지막으로 깜빡이는 그 순간까지도.

내 부모님, 그리고 모든 지인들에게 내가 존재하였음에 기쁘게 해주고 싶다.

그것을 이룰 것이다.

그것이 나의 행복이니까.


신경쓰이는 것이 있다면.

나는 내게 주어진 상황에 맞게 살아가는가 싶은 것.

삶에 흐름이 있다면, 그것이 나를 어떤 상황에 동화시키고 싶어한다면.

나는 언제까지 나의 몇가지 남은 고집들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