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란 것이 삶에 존재한다면 좋으련만.
오랫동안 썩은 고름 하나를 짜내보고자 이곳저곳 연락하고 조사를 했다.
친한 지인 한명을 대신하고 나를 위해 우리의 권리를 되찾겠다고.
충분한 합당한 이유가 있다 생각하고 문제는 뿌리부터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하에 그랬다.
그런데 가장 합당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이곳저곳에서 정보를 구하는 과정에
좀 너무 슬픈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고나 할까.
남들이 얘기해주지 않는 꺼려하는 이야기를 몇개 들었는데
결론부터 적자면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더 썩게 놔두는 것이 나을거라는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정답이라.
존재하긴 하는 걸까.
나의 합당함이 적어지지는 않는다.
단지 상대방의 잘못이 적어질 뿐이다.
하지만 이 두가지의 차이는 얼마나 커다란 걸까.
존재하긴 하는 걸까.
세상 많은 것들이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은 아픔에서 나오는 것이란 것을 새삼 느낀다.
반면 아무리 포장하려해도 근본적으로 아니라면 그것은 유지되지 못한다.
내 근본을 항상 확실히 해야하겠다는 새로운 인식.
알고도 행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이 삶일까.
안타까워함 밖에 줄 수 없는 것이 세상엔 얼마나 많을까.
난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If I am to yield a hammer of justice,
I must yield it for the better of others as well as my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