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남기고픈 것들을 볼 때마다 떠오른다.
내가 보는 것들을 함께 볼 수 있었으면했는데.
그럴 수 없어 미안하고 슬프다.
추억으로 남기고픈 것들은 나만의 기억이 되는구나.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었을텐데. 너도, 그리고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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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2011.
기억이 맞다면 헤어진 날이다.
기억이 맞다면. 하지만 이것도 가물가물하니 확실친 않다.
하이티 미션 여행을 돌아온 날 헤어졌었기에
그리고 그 날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기억이 맞을 것 같긴 하다만.
시간이 지나니 추억은 사라지고 기억이 남는다.
그때 담배를 끊겠다는 약속은 못 지켰지만 다른 약속들은 다 지켰던 것 같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만 가장 큰 문제는 나와 당신의 고집이었으리라.
이것도 아닐수도 있겠다만.
시간은 정말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가고 가져가고 싶었던 기억들마저도 퇴색시키는구나.
그다지 스스로를, 그리고 남을 변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여러모로 고맙다는 말은 하고 싶다.
날 사랑해줬기에.
그리고 몇달 뒤 다시 사귀자고 물어봐주었고 그때 어쩔 수 없는 심경으로 거절해야만 했을 때의 내 처절한 미안함을 알지못했다면 그것도 고마워해야하는 것일지도.
덕분에 우린 어떤 헤어짐이 깔끔할 수 있다면 깔끔하게 끝낼 수 있었던 것일테니까.
그 후로 2년.
직접 만나면 할 말이 없을 것이 두려워 피했고.
내 활동이 너무 많으면 의도치않게 편가르기가 될 듯해 가능한 서로가 친한 사람들과 만나지 않으려했다.
해주고 싶었던, 싶은 말은 언제나 한가지.
'행복했으면 한다'는 것.
아무 거짓없이 진실된 마음으로.
기도를 자주하진 않지만 성체 후 기도할때마다 기도했다.
'행복했으면 한다'고.
항상 기도중에 가장 먼저 생각났다.
이 마음에 조금의 사심도 없었다고 생각한다/믿는다.
결혼소식에 기뻤다.
내가 못해준,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 상황에 할 수 없었던 것이었기에.
우습다만 미안한 마음을 덜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이것은 교만한 생각일까.
교만한 생각이라면 내게 고맙다는 생각만이 남았다는 것으로 변명이 될까.
물론 변명할 기회는 없겠고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다시 만난다해도 무슨 할말이 있을까.
서로 평행선의 다른 곳에 서서.
평생 다시 교차점에서 만날 일이 없는게 더 좋을거라 생각한다.
2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년 정도는 헤메였던 것 같다. 아니, 헤메였다.
정처없이. 방황하며.
그 후 내게 생긴 변화를 느낀다.
너무 조심스럽지 않던 것이 많이 조심스럽게 변했다.
내 의사의 표현들이 때론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요즘은 그저 같은 하늘아래 살아있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가끔 내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만 안했으면 한다.
솔직히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만 내 바램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면 그랬으면 한다.
결국 줄 수 있는 것은 생각뿐.
같은 하늘아래 둘 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은총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나이를 먹긴 먹었는지 전에 못 느끼던 것들이 하나하나 피부에 와닿을 때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 쌓아가는 모습들이 보인다는 것.
페이스북에만 해도.
어떤 아이는 정치/경제/교육 등에 관심이 많아 그쪽의 포스팅을 자주 하고.
어떤 아이는 자기 작품들의 사진들을 올리고.
어떤 아이는 신앙적인 것을 올리고.
어떤 아이는 자기 감정에 대한 글을 올리고.
어떤 아이는 허세만 올리고.
어떤 아이는 셀카만 올리고.
어떤 아이는 연예인 소식을 올리고.
어떤 아이는 음식 사진만 올린다.
조금 더 어렸을 적엔 깊고 넓은 지식을 가진 교수님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많은 지식을 가졌을까' 궁금했던 때가 있었다.
답은 간단하다.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우리가 변해가는 것이리라.
비록 지금은 우리의 생각 하나하나가 포스팅 하나하나가 우릴 어떻게 변화시켜가는지는 모르더라도.
한방울 한방울 한땀 한땀.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결국 그것은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게되는가를 결정하지 싶다.
삶의 관성의 법칙과 긴 시간을 통해 외삽해 추측해보면
간단한 페이스북 글 하나로도 미래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나는 어떤 모습일까도 어렵풋이 그려진다.
그 모습은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니다.
삶의 양상은 변화해있겠지만 그렇다고 본질이 변해있진 않을테니까.
난 지극히 이성적이기에
내가 해야하는 것의 흐름을 알고 있고.
그렇기에 미래의 한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모으고 쌓고 준비한다.
하지만 지극히 이성적이기에
감성은 적으며 남들의 감성적인 행동을 이해하기 힘든게 아닐까.
그렇기에 충분히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게 아닐까.
무엇이 먼저였을까.
의무를 보았기에 남들과 어울리기 힘들게 된 걸까.
남들과 어울리기 힘들었기에 의무를 보게 된 걸까.
옛날부터 평범하진 못했다.
굳이 대답하라면 아마 후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평범해지고 차이가 없어지듯이
내가 준비하는 것들도 별 상관이 없어지지 싶다.
결국 그저 즐겁게 잘 살면 되는 것을.
그 최소조건은 그렇게 맞추기 어렵지 않다.
반면 시간이 지나면 그 반대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내게도 감성이 이성만큼 자라나겠지.
그 최소조건도 맞추기 어렵지 않지싶다.
그저 뒤틀리지 않게 자랄 수 있도록 살펴보며 가꾸어야 할 뿐.
이미 충분히 많이 받고 얻고 있지 않은가.
두가지가 서로 상호배제 할 이유는 없다.
지금 난 그저 그 균형을 찾아가고 있을 뿐인 듯 하다.
내 (이제는 짧지만도 않은) 삶을 돌아보면 주변 영향을 받지 않을래야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상당히 개인의 의견과 의지가 강하다는 말도 듣지만 위의 말은 진실성을 갖고 있다.
나이를 들어가며 그 상황에 해야하는 일들이 변화하고 서서히 다가오며
그 압력 속에서 한마리 미꾸라지처럼 압력을 피해온 것 같다.
그것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모르는 길들을 삶이 알려줬기 때문.
눈과 머리를 열고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면 닫히는 문들을 보며 때로는 서두르며 때로는 걸어가며 하나하나 지나가며 새로운 문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언어공부의 압박속에서 언어를 배웠고.
대학입시의 압박속에서 공부를 했고.
취업의 압박속에서 내 가치를 재확인했고.
이끄는 위치의 부르심에 응했다.
세상의 요구에 나아가고.
세상의 압박을 피해가고.
그때 그때 맞다싶은(끝이오지 않으면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감은 온다) 결정들을 내리고.
때론 본의치않게 남을 밟으며 올라선 것도 같지만(하지만 그것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음 문장에 따르면).
때론 본의치않게 밟히며 배우고.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나아가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아닌 때론 물러나기도 하며.
날 겁이 많다하여도 그렇게 틀린 것은 아니지싶다.
압력을 마주 싸운 적은 거의 없다.
압력이 오면 그걸 피해 빠져나갔었을 뿐.
남의 눈엔 이것이 용감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만.
(그러고보면 용기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을지도)
생각해보면 이 모든 순간들이 나를 만든 순간들이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순간들이 행복했던 순간들이 아닐까.
지인이 말했다.
전에 바라던 것을 이루니,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고.
전에 바라던 것을 이루니, 새로운 바램들이 생겼다고.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나는 어렴풋이 답을 안다고 생각한다.
어렴풋이 알기에 확신에 차서 말해주지 못하고,
말해주기엔 너무 나서는 것 같아 말해주지 못하고,
아무리 말해준다해도 본인이 받아들일 때가 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고,
또한 나의 말함으로 인해 본인의 고민이 너무 가벼운 것으로 인식되는 것 같을까봐 말해주지 못한다만.
간단한게 아닐까.
새로운 고민이 언제나 생길 거란 것을 인정하면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삶이란 고민의 연속인 것을.
늙은 고민이 사라지면 어린 고민이 찾아온다.
고민이란 것 자체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가장 먼저 고민들이 항상 있을 것이란 것을 인식해야하지싶다.
그러면 새로운 고민이 낯설지 않아질지도.
그리고 그 과정은 욕망 하나하나를 내려놓음으로서 이루어진다/표현된다.
고민을 인식한다는 것은 욕망을 인식하는 것.
욕망을 인식하지 못하면 내려놓으려는 시늉은 한다해도 성공하진 못하지싶다.
물론 욕망 중에서 몇가지는 가지고 가야한다만 그 몇가지를 선택했다면 나머지는 살며시 내려놓아야한다.
주어진 시간이 정해져있는데 모든 것을 이루고 싶어하는 것은 탐욕,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생각함은 오만이 아닐까.
날고 싶다면 무게를 줄여야 하듯이.
더 멀리 날고 싶다면 더 줄여야 하듯이.
한 가지를 키우고 싶다면 다른 가지들을 잘라내야 하듯이.
고민들의 근본인 욕망의 가지들을 잘라내야한다...
잃을 것을 정하지 않고는 얻을 수도 없다.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때로는 오만이다.
괜찮다. 아직은 모른다해도.
시간이 지나면 주변이/상황이 알려줄테니.
이 이야길 나에 관해서 한다면.
몇년간 충분히 원하는 만큼 하고싶은 것을 했다.
충분히 나의 빛이 어떤 것인지 찾았고 원하는 만큼 빛을 발했다.
미련도 없앨 수 있는만큼 없앴다.
매번 몇년 뒤를 기약하지만 괜찮다.
난 시간이 지나면 빛을 발할 성격이니까.
설령 그 빛이 내가 지금 생각하는 빛이 아닐지라도.
설령 정작 발할 때가 오지 않는다해도 괜찮다.
그렇다면 과정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지싶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아니다.
전의 모습을 다시 취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도 날 찾아주지 않는다.
전의 모습을 버렸기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몇년 뒤엔 무엇인가 되어있으리라.
욕망이 다시금 고개를 들 때마다 항상 스스로에게 말하자.
둥그스름한 구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되고 싶은 것은 완전한 모양의 정육면체.
언제나 모는 있을 것이다만 하나의 벽돌로서는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날개와 최소한의 식량만을 남겨두고 모든 것을 잘라낸다.
갈 길이 멀기에 어쩔 수 없다.
지인이 적은 나에 관한 글.
느끼는 바가 있어 갈무리해두고 싶은데 따로 놔둘 곳이 없기에 이곳에 놔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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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친구
요사이 나에겐 젊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대부분 친구들은 젊은 나이에 걸맞게 제 멋에 사는데
유독 선명한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는 한 친구가 나의 눈길을 끈다
가끔 이 친구가 자기의 글에 나를 언급하기에 나도 한마디 하련다.
매우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친구인데
자기 힘으로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가는 스타일이다
그러면서도 신앙생활을 통해 자기 성찰과 우정을 돈독히 하고 있다
게다가 나이에 안맞게 자기 절제가 철저하여
대부분 새벽에 일어나서 무엇인가 자기 할 일을 하고 출근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악기를 혼자서 열심히 한다
취미로서의 악기....좋아서 하는 악기......
누구도 강요안하는데 혼자서 악기를 한다는건
그 악기를 아는 나로선 대단한 일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친구는 독서광이다.
어느정도냐 하면 친구랑 식사약속을 나가면서도 책을 들고 나간다.
너무 아는게 많아 불편하지 않을까 할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친구이다.
뿐만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열열한 순정파이다. ㅋㅋㅋ
이렇게만 보면 이 친구 99점이다.
그런데 이 친구가 어제 저녁때
자신이 점심때 먹은 도시락을 닦는 모습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농담삼아 몇마디 했지만, 다 자는 새벽에 홀로 일어나
그 바쁜 출근시간에 도시락을 챙겼다고 생각하니 대단한 친구이다.
하지만 자신의 직장에서 한참 social을 하여야 하는 젊은 친구가
직장 동료와 어울리고 친해질 수 있는 귀한 점심시간을
다른 사람과 떨어져 혼자 식사를 했다고 생각하니 좀 그렇다.
도시락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는 그의 홀로의 모습이 안스럽다
조금만 더 포용력을 가지고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 있다면
그는 남은 1점을 더 할 수 있을텐데.....
가끔 점심 후에 사색을 위해서 산책을 한다는데,
그럼 그 시간도 혼자인 셈이다. ㅉㅉ
그가 특별한 unique한 사람이 아니라(높이가 아니라)
남과 어울리는 generous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깊이가 있는)
아니면 말구.....
오늘 성당에서 신부님이 강론중 물으셨다.
"이번 주 '난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손을 들려고 했는데 아무도 안들기에 뻘쭘해서 그만뒀는데
생각해보니 별 걱정없게 사는게 행복이라면 난 행복한 걸거다.
직장에서 프로젝트가 잘 안풀려서 스트레스 받지만 그건 별개.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그다지 미련도 없고 그 이상 걱정은 없다.
지금 내 삶에 유일하게 맘에 안드는 것이 있다면 그건 생활이 무미건조한 것?
삶이 두렵지 않다.
죽음도 두렵지 않다.
바꿔 말하면 그다지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이 없고,
바꿔 말하면 그다지 삶을 즐겁게 하는 것이 없다.
힘들게 하는 것이 있으면 오기로라도 극복하려 할테고
(너 나중에 두고보자... 등)
즐겁게 하는 것이 있으면 그냥... 좋지 않을까?
두려운 것은 아무 변화가 없는 것.
열정과 오기가 풍화되는 것.
그냥 그저 그런 것.
그냥 그저 그렇게 되는 것.
권태.
이것이 가장 싫다.
그동안 싸이에 몇개의 글을 쓴다고 이곳을 소홀히 했었음이라..
뒤늦게 많은 것을 배우고싶다.
어렸을 때는 '세상의 모든것을 배워서 내가 짱이될테야'란 생각도 해봤었지..
나도 나이를 먹고 철이들어 그것이 불가능하단 걸 안다.
그렇기에 이번 배움의 욕망은 그 범위가 훨씬 작다.
전에 내가 관심을 가지던 소재는, 무차별 순으로:
우주. 물리. 컴퓨터. 경제. 심리학. 사회학정도 였었다.
시간히 흘러, 내가 변해, 요즘은 감성적인 소재들을 배우고싶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것이 그 방면엔 워낙 없기에 우울함을 느낀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시를 써서 남기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그 음을 알고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아는 것이 없으니 보이는 것도 없다.
심상을, 마음을 쏟아내어 표현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은 상당히 괴로운 일이다.
신년에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잘 이행하고있다.
꼬박꼬박 첼로 연습을 하고(이제 바흐의 Minuet이 소화되기 시작한다), 매일 달리고.
책은 단테의 '신곡'을 읽고있다.
많은 생각을 자아내는 책이다. 어찌보면 내게 성경보다 더 천국과 지옥, 그리고 창조주에 대해 쉽게 말해주는 책이다.
조만간에 한국에 간다.
오래 외국에 홀로 살다보니 한국이 그립고 원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는 그것이 향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것을 안다.
한국에 돌아가게되면 조만간 미국이 지금 한국이 그리운 것처럼 그리워지겠지.
나의 잊혀져가는 국어실력처럼, 이제 국어보다 더 편해지는 영어처럼 내겐 한국과 미국중 미국이 더 그리워질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한국을 그리워한다.
어디에서도 완전한 만족을 못 찾는 나를 보면 피식 웃게된다.
요즘들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겐 어디가 심심함과 우울함과 외로움의 경계일까?
어머니 추천으로 봤는데 정말 재밌게 봤다. 소화가 안되는 부분도 적지않게 있었지만 전체를 보면 추천하고픈 드라마로서의 완성도는 상당급되는 작품이다.
보면서 감정에 휩쓸려 울기도 했고...
마에스트로 강... 당신을 존경합니다.
2. 요즘 조금 우울하다. 우울함도 기쁨도 모두 생활의 활력으로 쓰려고 하지만 (그리고 그런것에 나름 익숙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우울한 건 어쩔 수 없다.
3. Batman: The Dark Knight DVD 출시. 지금 지르려 나가보려한다. Amamzon에서는 $15던데 Target에서 $20 넘어가면 조용히 통신주문해야지...
4. 그럭저럭 괜찮게 버는데 왠 돈 쓸일이 이렇게 많은지... 저축은 언제하지?
5. 요즘 내 블로그에 방문하는 사람 숫자가 많아서 놀란다. 하루에 25는 넘기는 것 같은데, 써치엔진들이 글 올릴때마다 한 10개쯤 방문하는 건 알지만 나머지 15는 해석이 안된다.
내 성격이 조금 비뚤어져서 조용히 숨겨놓고 혼자 업데이트하며 스트레스 푸는 곳인데, 조회수가 높으니 감정이 묘하다.
누가 오나요? ㅇ_ㅇ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