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말했다.
전에 바라던 것을 이루니,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고.
전에 바라던 것을 이루니, 새로운 바램들이 생겼다고.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나는 어렴풋이 답을 안다고 생각한다.
어렴풋이 알기에 확신에 차서 말해주지 못하고,
말해주기엔 너무 나서는 것 같아 말해주지 못하고,
아무리 말해준다해도 본인이 받아들일 때가 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고,
또한 나의 말함으로 인해 본인의 고민이 너무 가벼운 것으로 인식되는 것 같을까봐 말해주지 못한다만.
간단한게 아닐까.
새로운 고민이 언제나 생길 거란 것을 인정하면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삶이란 고민의 연속인 것을.
늙은 고민이 사라지면 어린 고민이 찾아온다.
고민이란 것 자체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가장 먼저 고민들이 항상 있을 것이란 것을 인식해야하지싶다.
그러면 새로운 고민이 낯설지 않아질지도.
그리고 그 과정은 욕망 하나하나를 내려놓음으로서 이루어진다/표현된다.
고민을 인식한다는 것은 욕망을 인식하는 것.
욕망을 인식하지 못하면 내려놓으려는 시늉은 한다해도 성공하진 못하지싶다.
물론 욕망 중에서 몇가지는 가지고 가야한다만 그 몇가지를 선택했다면 나머지는 살며시 내려놓아야한다.
주어진 시간이 정해져있는데 모든 것을 이루고 싶어하는 것은 탐욕,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생각함은 오만이 아닐까.
날고 싶다면 무게를 줄여야 하듯이.
더 멀리 날고 싶다면 더 줄여야 하듯이.
한 가지를 키우고 싶다면 다른 가지들을 잘라내야 하듯이.
고민들의 근본인 욕망의 가지들을 잘라내야한다...
잃을 것을 정하지 않고는 얻을 수도 없다.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때로는 오만이다.
괜찮다. 아직은 모른다해도.
시간이 지나면 주변이/상황이 알려줄테니.
이 이야길 나에 관해서 한다면.
몇년간 충분히 원하는 만큼 하고싶은 것을 했다.
충분히 나의 빛이 어떤 것인지 찾았고 원하는 만큼 빛을 발했다.
미련도 없앨 수 있는만큼 없앴다.
매번 몇년 뒤를 기약하지만 괜찮다.
난 시간이 지나면 빛을 발할 성격이니까.
설령 그 빛이 내가 지금 생각하는 빛이 아닐지라도.
설령 정작 발할 때가 오지 않는다해도 괜찮다.
그렇다면 과정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지싶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아니다.
전의 모습을 다시 취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도 날 찾아주지 않는다.
전의 모습을 버렸기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몇년 뒤엔 무엇인가 되어있으리라.
욕망이 다시금 고개를 들 때마다 항상 스스로에게 말하자.
둥그스름한 구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되고 싶은 것은 완전한 모양의 정육면체.
언제나 모는 있을 것이다만 하나의 벽돌로서는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날개와 최소한의 식량만을 남겨두고 모든 것을 잘라낸다.
갈 길이 멀기에 어쩔 수 없다.